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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괴매당한 아들을 찾기 위하여 12년동안 모터사이클로 29개성을 돌아다닌 남자!!

사람들은 허영심으로 늘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한다.

인신매매라는 범죄활동의 본질이 바로 다른사람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생리상의 문제로 2세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들은 정상적인 수단으로 고아원이거나 기타 복리기구에서 수속을 통하여 아이를 부양하는것이 아니라 일부 인신매매범죄자들한테서 직접 아이를 건네받는 상황이 있다.

또 일부 아이들은 괴매당한후 편벽지역 농민들에게 헐값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막론하고 아이를 괴매하는것은 도덕에 어긋나며 또 그 연대후과도 아주 엄중한것이다.

일전, 모 지역에서는 12년동안이나 아들을 찾아다녀 전국 29개성을 돌아다닌 아버지가 매체를 통해 공개되여 아이들을 괴매하는 범죄행위에대한 전격적인 타격과 관련 부문의 아이호적과 출생심사에대한 정밀성을 호소하는 열풍이 일어났다.

함께 아래의 상세기사로 구체적인 사연을 살펴보도록 하자.

( 이상 올린이 입장 )


12년전 곽씨는 아들이 인신매매 범죄자들에게 괴매당한후 모터사이클을 타고 장기간 동안의 아들찾기를 시작하였다.

12년동안 그는 전국각지를 돌아다녔고 7, 8 대의 모터사이클을 페기해버렸으며 선후로 7명의 아이를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였지만 자신의 아들은 되찾아 오지 못하였다.

생활을 위하여 2010년초 그는 북겨의우상품성에서 가게 하나를 전세맡고 조롱박판매로 집식구들의 생활을 유지해나갔다. 지난 3월1일 그는 기자에게 12년동안의 아들찾기 경력을 털어놓았다.

산동경성경제개발구 리대툰마을에 살고있는 곽씨는 본래 아주 행복한 가정을 소유하고있었다.

10여년전 그는 고향에서 농사로 가난한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집부근에 건재판매센터가 일떠서자 기회를 잡은 그는 두대의 인력거로 매일 물품을 나르는 일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집 가정형편과 경제조건이 향상되였고 마을사람들속에서 으뜸가는 부자로 등급하였다. 그러나 곽씨가 크게 사업을 벌려보려던 찰나 불행이 닥쳐왔다.

1997년 9월 21일은 곽씨의 12년동안 후회를 자아낸 지옥의 시작이였다.

그날 저녘 곽씨의 2살나는 아들은 20여세나는 젊은여자에게 어디론가 데려간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매번 당시의 상황을 회억할때면 곽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 그때 일을 도맡지 않고 그냥 아들곁에 있었더라면... " 끊임없이 같은말을 반복하는 곽씨의 얼굴에는 죄송함과 후회에 젖어 있었다.

그날 저녘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곽씨는 마을사람들이 자기집 문어구에 모여있는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하였고 마을사람들이 " 당신의 아들이 실종되였소... " 라는 말에 바로 무릎을 꿇어 마을사람들에게 어서 빨리 아들을 찾아달라고 청들었다. 그것이 곽씨의 난생처음 무릎을 꿇은 기억으로 되였다.

곽씨의 아내는 아들을 잃어버린후 누가 집을 방문하던 불문하고 사람만보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애걸하였다. 아들을 금방 잃어버린 몇개월동안 마을사람들은 몇백명의 " 아들찾기대오 " 를 설립하여 총동원하여 찾아보았지만 아들은 종무소식이였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외손자가 잃어졌다는 소식을 몇년두에 알았고 상심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후 곽씨는 1998년 한대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들찾기를 시작하였다.그러나 이번길이 장장12년이라는 시간이 걸릴거라는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12년동안 그는 7, 8대의 모터사이클을 페기해버렸고 30여만원의 자금을 허비하였으며 지도에 자신이 갔던 도시를 붉은점으로 표기하여놓았다. 지도에서 보면 신강, 서장, 청해와 대만을 뺀 기타 성시에는 모두 붉은점이 표기되여있었다.

아이를 찾는동안 곽씨는 생존을 위하여 막일을 한적도 있고 구걸을 한적도 있었다. " 한번은 이틀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여 한음식점에가서 먹을것을 구걸한적도 있었습니다. " 라면서 목이 메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 고생은 헤아릴수 없이 많이 했죠... " 라면서 그는 머리를 숙였다.

아들의 손자찾기를 지원해주기 위하여 늙은 량주는 70세고령으로 모 식당후근일을 하면서 자금지원을 해주고 있다. 오랜 생각끝에 곽씨는 두번째 아들을 보았으나 그의 행동거지에서 늘 큰아들 생각이 나서 한번 또 한번의 아들찾기길에 나섰던것이다.

여러해동안의 아들찾기로 그는 관련정부기관에게 호적관리, 출생증명.. 등부분의 엄격한 심사를 요구했고 이부분에서 제대로된 심사와 관리를 거친다면 괴매당한아이들을 되찾는것은 보다 쉬운일이라고 강조하였다. 12년동안 그는 여러명의 괴매당한 아이를 본래가정에 돌려보냈지만 자신의 아들은 찾지못하여 심한 고통과 후회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출처: 큐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