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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대성통곡하면서 감옥에서 석방되는것을 거절하는 86세 죄수

시간은 사람의 의지력을 말살하고, 사람의 습관을 개변시킬뿐만 아니라 점차 체계적인 관념도 깊이 뿌리밖게 하는 특성을 소유하고있다.

일전, 모 감옥에서는 석방되는 로년죄수가 대성통곡하면서 출옥을 거절하는 사진이 관련 매체에 공개되였고 로년 범죄자들의 출옥후 생활문제와 그들의 감옥생활에 완전 물든 관념과 습관으로 바깥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회현상이 사람들의 깊은 생각을 자아냈다.

감옥생활도 일상생활처럼 1년이 다르고 3년이 다르며, 5년되면 완전 그 생활에 물젖어 사고방식과 일상스케쥴 습관이 완전 적응이되며 반평생동안 감옥에서 생활한 로년 죄수들은 감옥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며 출옥을 극력반대하는 비정상적인 정서표현을 나타낸다.

그냥 부모들이 년로해지고 병이 많아져서 움직임이 불편해지면 일부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임에도 불문하고 보살펴주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로인을 학대하고 무시하는 불효한 행위를 보이게 된다.

몇십년동안 감방생활을 한 부모를 누가 모시려 할까? 또, 사회 복리기구에서는 그냥 길거리에서 떠돌아다니는 로인들도 많은데 죄수 로인을 거두어줄려고 할까? 참으로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로년죄수들의 마지막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 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적라라하게 발견할수 있다.

함께 아래의 상세기사로 구체적인 사연을 살펴보도록 하자.

( 이상 올린이 입장 )




2009년 10월 24일은 손씨가 감옥에서 석방되는 날이다. 하남성제3감옥의 경찰들은 그의 손을 대신하여 잡아주어서야 간신히 석방증에 싸인을 할수있었고 규정에 따르면 죄수가 출옥할때에는 머리를 기르고 목욕을 해야하며 죄수복을 새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맞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86세의 죄수는 아깐힘을 모아서 감옥경찰의 옷깃을 거머쥐고 새옷을 갈아입는것을 극력거절하였다.

지금의 손씨를 보면 전에 그가 돈을 도적질하고, 차도 도적질하였으며 미성년 여자애까지 강간하였다는 죄증을 연상할수조차 없었다. 반평생동안 5번감옥에 들어갔다가 5번 석방되여 나왔으며 감옥에서 그는 4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며 86세가 되여서야 새로운 자유의 날을 맞이하게되였다.

출옥하는 기쁜날에 그는 대성통곡하면서 떠나기 싫다고 떼를 썼고 준확하게 말해서 그를 데려가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3번째 감옥에 들어올대 그의 가족은 이미 그와 관계를 절단하였고 하남성제3감옥에있는 13년 동안 그를 보러온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손씨의 서면자료에 유일하게 찾을수있는 기록이 그의 사촌여동생이 남긴것인데 " 그냥 총살하여 주세요, 다른말은 할말이 없네요. " 라고 적혀져 있었다.

누구도 손씨의 과거를 완정하게 서술할수 없었고 그 자신마저도 말을 제대로 하기 힘들어했다. 출옥전 3개월전에 감옥경찰들은 그의 서면자료에서 86세에 나는 로인의 과거를 뜯어맞출수 있었다.

1923년 손씨는 해방전에 국민당청년군에 참군하였고 패장의 직위에까지 올랐다. 해방후 모 철도국 공인으로 있었고 1954년에 30개의 서양동전을 훔친죄로 감옥에 1년있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손씨는 감옥규정을 어긴죄로 감옥기간이 2년 증가되였으며 그뒤 3번 범죄는 그 시간간격이 3년을 초과하지 않았고 전부 절도죄를 범했다.

1957년 처음 출옥시 손씨는 이미 40세에 가까웠고 기술이 없고, 땅이 없으며, 호적이 없고 단위가 없는 사람으로 되였다. 그가 매번 출옥할때마다 시대의 돌연적 변화로 인하여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다.

손씨는 매번 출옥후 정당한 일을 찾아하려고 노력했고 이론상으로 정부와 사회적기관에서도 출옥인원에게 새로운 삶을 협조해주어야하는데 매번 손씨는 정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노력한다는것이 오히려 감옥에 있는동안 사귀였던 친구들과 휩쓸었고 나중에 절도죄로 재차 감옥에 들어가게 된것이다.

1988년 손씨는 백화상점에서 일상용품절도죄로 감옥에 8년동안 갖히게 되였고 1996년 네번째 석방시 모 농촌에서 수박가게를 보는일을 하였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미성년소녀를 강간하였고 분노한 촌민들이 그를 파출소로 압송하여 결국 17년이라는 유기징역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그해 손씨는 이미 73세 였다.

제3감옥의 자료에 의하면 손씨가 갖혀있는 13년동안 잘못을 저지른적이 없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병든 감옥인원을 보살펴주었으며 매사에 조심스러워 하면서 소학생마냥 착하게 살아왔다고 적혀있었다.

다른 감옥죄수들보다 기억력이 유달리 좋은 손씨는 늘 경찰들이 남겨준 숙제를 열심히 완성하였고 이럴때마다 늘 기타 죄수들의 존경을 받았다. 초중을 필업한 그는 이미 외부세계와 완전히 탈리 되였고 " 올림픽 " 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몇십년동안 감옥경찰을 " 정부 " 라고 불렀다.

손씨가 출옥후 감옥경찰들의 수많은 노력과 고생끝에 그를 모 경로원에 안배할수있었다. 처음 며칠동안 그는 늘 경로원의 인원이 24시간동안 그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화를 냈다. 한주일후 그는 점차 경로원의 인원은 감옥에서 석방되기 위하여 자신을 보살펴주는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의 괴롭힘에 화가난 경로원 간호원들은 가끔씩 " 은혜를 모르는 늙은령감! " 이라고 격분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한달후 감옥경찰 조씨는 경로원을 방문하였고 침대의 한 모퉁이에 옹송그리고 있던 손씨는 바로 두손을 벌려 " 정부, 저는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라고 웨쳤다.

2009년 12월말 손씨는 출옥 2개월뒤 경로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감옥시스템에서 로년죄수의 관리와 출옥후 안배문제는 늘 사회관련인사들의 주목을 받았고 로년죄수들은 쉽게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쉽게 심리문제가 생기고 자살을 하는 확률이 가장 높은 단체이다. 그들의 출옥뒤 생활문제도 늘 감옥경찰들의 고민을 자아낸다. 일부 사람들은 로년죄수들은 이미 사회에대하여 큰 위해성을 끼치지 않음으로 더 늙어지고 병들기전에 감옥에서 석방하는것이 어떻냐?는 질문을 제기하였고 이와 반면에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의 출옥하여 그들의 생활을 해결하는것보다 아예 감옥내에서 어떻게 그들의 마지막길을 걷게할수있는가도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보였다. 필경 기나긴 시간동안 이미 감옥이 그들의 유일한 " 집 " 으로 되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출처: 큐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