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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고액의 월급을 포기하고 고향산촌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은 여대생 --- 호주석님과의 약속...

살다보면 사물은 진행과정을 정확하게 추리하거나 판단해낼수 있지만 사람만은 절때 완전공제할수없다는것을 느끼게 된다.

일전, 모 여대생은 고액의 월급을 받을수있는 일자리를 포기하고 고향의 산촌으로 돌아가서 힘들고 고달픈 선생님직업을 찾아 주위사람과 남친의 외면까지 당한 사연이 대외에 공개되였다.

" 고향에 가서 교편을 잡는것은 저의 리상이고, 인생목표입니다. " 라고 자신의 굳은 신념을 강조하는 여대생의 언어와 표정에서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위해 청춘을 받치려는 " 혁명자 " 의 그림자를 찾아볼수가 있었다.

리상을 위해 헌신하는것은 이해할수 있으나 사람은 항상 주위환경과 가족, 경제, 물질생활등 여러방면을 잘 둘러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회는 한번 사라지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매번의 기회를 잘 잡고 높은곳으로 진급하여야 더욱 좋은 생활 / 행복한 생활을 할수있다고 본다.

과연 돈이없는 리상만으로 사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될수있을까? 하는게 현시대 젊은이들의 앞에 놓여진 선택인것 같다.

함께 아래의 상세기사로 농촌여교사로된 여대생의 사연을 살펴보도록 하자.

( 이상 올린이 입장 )


일전, 중국농업대학을 졸업한 도람란은 전국빈곤현 --- 중경풍도의 모 향진중학교에 보도하였다. 7년전 그녀는 촌민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중경 첫기의 남개중학독학반에 입학하여 명문대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남개중학첫기 독학반주임 교정용은 " 전반학생은 모두 중경시 각현성의 빈곤가정에서 모집해온 학생들입니다. " 라고 학생원을 설명하였다. 2005년 중경첫기의 독학반은 대학시험에 참가하였고 남개중학 독학방의 학생들은 신체상문제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것외에 기타 학생들은 전부 중점본과에 입학하게 되였다. 현재 이 반급 학생들은 여러 매체의 특수 관심하에 이미 전부 필업을 하게 되였고 50명 독학반 학생중 23명은 북경대학, 청화대학 등 명문대학에서 연구생이거나 박사를 따냈으며 25명은 이미 북경, 성도, 상해, 남경 등 대도시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찾아 사업을 벌려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금년 5월 2일, 호금도 주석님은 중국농업대학에 방문하여 여러 사생들과 5, 4청년절을 보냈다. 중경팽수여자애 도람란은 중국농업대학의 유일한 졸업생대표로 발언을 하였다.

도람란은 그날 학교생명과학청사의 1층 회의실에서 그녀는 5분동안의 발언시간내에 소학교때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새 엄마를 찾은과정과 혼자의 힘으로 3명의 여동생들과 함께 담임선생님의 집에 류숙하면서 나중에 중경첫기의 독학반에 입학한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 중경팽수의 여자애는 선생님과 동학들 그리고 주석님을 앞에두고 큰소리로 " 저는 필업후 고향으로 돌아가 교편을 잡겠습니다! " 라고 소리쳐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도람란은 " 주석님은 저의 손을 꼬옥 잡으시고, 저와 많은 동학들이 농촌기층에 내려가서 공헌할것을 환영한다고 " 칭찬해주었다 하였고 이어서  " 실은 주석님과의 약속전에 이미 대학교 3학년때 저는 동학들과 함께 한 농촌 소학교에 가서 의무교원을 했고 농촌의 락후한 교육현황을 발견한후 바로 풍도현특강교사 시험을 보고 2년의 교학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 라면서 " 비밀 " 을 토로하였다.

도람란은 " 제가 풍도에가서 교원직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동학들은 모두 저를 미쳤냐? 라고 질책했습니다. " 라면서 당시 그는 2개의 기업 채용통지서를 받았고 " 두 직업은 모두 북경에 있고 대우가 좋으며 출근하면 바로 월급 8000원을 주겠다는 승낙까지 받았습니다. " 라고 이미 정해진 고신 일자리를 설명하였다.

" 저의 남자친구는 제가 농촌에 가서 교원을 하겠다는 말을 듣자 바람으로 저와 헤여졌습니다. " 대학생 남자친구와의 헤여짐을 말하면서 목이멘 그녀는 " 그러나 저의 리상을 위하여 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것입니다. " 라고 굳은 신념을 표달하였다.

현재 도람란은 풍도룡하진의 한 중학교에서 물리특강교사직을 하고있다. "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한주 23개 시간을 보아야하고 하학후 길가의 농호한테서 채소거리를 사 자기절로 해먹으면 일부 비용을 모을수 있습니다." 라고 현재의 교직생활을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 저는 하나의 농가집을 세맡았고 매달 100원가량의 세돈이 들기때문에 근검절약해 써야합니다. " 라고 덧붙여설명하였다.

" 생활이 비교적 쪼들리긴 하지만 있는힘껏 저와 저의 가족들을 챙길것입니다. " 라고 밝혔고 그녀의 특강교원 월급은 1500원좌우이고 일상생활비용외 3명의 초중을 다니는 여동생의 학비까지 내야했다. 이런 언니의 선택에 의하여 3명의 여동새은 강렬한 반대의견을 보여줬고 " 우리는 언니가 북경에 가서 취직하였으면 좋겠어요! " 라고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했다.

" 후회하지 않아요? 이젠 다시는 북경으로 취직할수없을지도 모르는데... " 라는 기자의 물음에 도람란은 " 현시대의 각격관은 다원화 성질을 띄고 있어 고향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는것은 내 맘속의 갈망이고 리상입니다. " 라고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출처: 큐큐뉴스